대동강 맥주보다 맛없는 한국 맥주들!
수제맥주 붐이 시작되던 초기, 한 외신기자가가 밍밍한 맛의 한국 라거 맥주를 비판하는 기사에서 했던 말이다. (이 외신기자는 다음 해에 더부스를 차려 ‘대동강 페일에일’을 런칭한다.)
우리나라 맥주 소비량의 70프로 이상을 차지하는 카스와 테라가 특별한 풍미가 없는 맥주라는 건 맥주를 마시는 이들이라면 대부분 인정할 것이다. 이건 OB나 하이트 진로의 마케팅 팀을 데려와서 물어봐도 마찬가지일 테다. 그렇다면 이 심심한 라거들이 못 만든 맥주일까? 편의점에서 보는 일본이나 미국의 라거와 비교해봐도 정말 수준이 떨어지는 걸까?
우리가 하나로 뭉뚱그려 부르는 라거도 다양한 종류가 있다. 맥주의 종류를 간단히 구분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나라 라거 맥주에 대한 오해도 다소 풀릴 것이다.
같은 종목끼리 붙이자!
한국 맥주가 맛이 없다고 할 때, 풍미가 강한 독일의 바이젠 밀맥주나 호가든 같은 벨기에의 밀맥주, 심지어 기네스 같은 흑맥주나 IPA를 비교 대상으로 두는 경우가 있다. 이는 축구 선수를 야구장에 데려다 놓고 왜 공을 못 치냐고 비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 다양한 종류의 맥주가 섞여있는 편의점 맥주 코너 -
공정한 비교가 되려면 같은 종류의 맥주를 두고 비교해야 하지 않을까? 편의점이나 마트에 가서 맥주 코너를 보자.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맥주들이 모여있다. 국산 라거와 비교한다면 어떤 녀석들을 골라야 할까? 맥주를 어떻게 구분할 지 알아보자.
두 종류의 맥주만 생각하자. 라거, 그리고 라거가 아닌 맥주
맥주를 분류하는 기준은 다양하다. 맥주 발효에 사용하는 효모의 종류에 따라 나누거나, 국가에 따라 나눌 수도 있다. 전문적으로 맥주 공부를 하는 입장이 아니라면 그보다는 맥주가 어떤 맛과 향, 개성을 가지고 있는 지에 따라 구분하는 것이 간단하면서도 직관적이지 않을까.
에일 효모가 어떻고, 라거 효모가 어떻고는 자세히 설명해봤자 복잡하기만 하다. 일단, 라거와 라거 아닌 맥주가 있다고만 생각하자. 라거는 대부분 효모가 만들어내는 맛이나 풍미가 약하거나 거의 없는 맥주다. 흔히 시원한 생맥주를 마실 때 표현하는 깔끔하고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 여기 어디에도 효모의 개성은 드러나지 않는다. 대신 맥아에서 나오는 고소한 풍미와, 홉에서 나오는 약간의 쓴맛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올-몰트 비어 vs 쌀-옥수수 맥주!?
라거가 아닌 맥주들은 이제 비교 대상에서 제외시키자. 우리가 비교해야 할 맥주는 국산 라거와 바다 건너 타국에서 만들어진 라거다. 그전에 국내 라거들 사이에도 차이가 조금씩 있다는 걸 놓쳐서는 안된다.
카스와 테라, 클라우드와 맥스를 비교해서 마셔보면 바로 맛의 차이를 느끼게 된다. 카스나 테라에는 맥아 외에도 다른 곡물이 들어가지만 클라우드 맥스는 경우는 독일 맥주처럼 맥아만을 사용한다. 후자의 경우처럼 맥아만을 사용한 라거는 전자와 구분되도록 ‘올-몰트(All-malt)’ 라고 표시하는 경우도 있다. 맥아 대신 쌀이나 옥수수가 더 들어간 부산물 라거는 깔끔하고 가벼운 목넘김이 장점이고, 올몰트 라거의 경우는 반대로 고소한 곡물의 맛과 향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장점이다.
눈 가리고 맥주 마시기
맥아 외에 쌀, 전분, 옥수수 등이 들어간 부산물 라거
맥아만 들어간 올-몰트 라거
기회가 된다면 같은 그룹에 있는 맥주들을 한 캔씩 사서, 블라인드 테이스팅(레이블을 가리고, 브랜드를 알 수 없게 한 상태로 시음하는 것)을 해보자. 큰 차이를 느끼기 힘들 것이다. 오히려 수입 맥주들은 장기간의 해상 운송 중 온도의 변화까지 겪다 보니 품질이 저하되는 경우도 있어, 우리나라 맥주보다 신선한 맛이 떨어지기도 한다.
맥주가 잘보이는 적당한 크기의 플라스틱에 숫자나 기호를 써두자.
테스트를 도와줄 진행자가 컵에 맥주를 따르고 진행자만 알 수 있도록 어느 컵에 어떤 맥주가 들어갔는지 기록해둔다.
실제로 주위 사람들과 편의점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라거를 블라인드 테이스팅 했을 때, 대부분 반응이 ‘거기서 거기다’는 반응이었다. 향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특별히 어떤 맥주가 맛있다고 할만큼 구분이 되지는 않는다는 의견이 다수였다.
라거는 라거다
카스와 테라가 특별한 맛이 없는 것은 사실이지만, 못 만든 맥주가 아니라는 것. 애초에 미국 스타일의 부산물 라거(맥아 외에도 쌀, 옥수수를 사용해 만든 맥주) 자체가 한자리에서 끝없이 마실 수 있고, 어떤 음식이랑 먹어도 부딪히지 않도록 심심한 맛으로 설계된 것이다. 영국의 유명 셰프 ‘고든 램지’가 카스를 극찬한 것도 그저 립 서비스가 아니다. 셰프로서 음식이 주연이 되게 하는 맥주를 좋아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오늘의 얘기를 짧게 요약하자면, 특별한 맛이 없는 건 국산 맥주가 아니라, 부산물 라거 특징일 뿐이다. 가볍디 가벼운 부산물 라거에서 너무 많은 맛을 기대하고 있진 않은가? 진한 풍미를 원한다면, 클라우드, 맥스같은 올-몰트 라거나 라거가 아닌 에일 계열의 맥주를 마셔보자. 국산 맥주도 괜찮은 맛을 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