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소주로 세워졌다면, 믿을 수 있을까요?
한국을 왜 소주로 세워진 나라라고 말할 수 있는지, 지금부터 짧은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1960년대 군사 정권은 곡물 소비량을 줄이기 위해 기존에 곡물로 만들던 증류식 소주 대신 지금의 희석식 소주를 적극적으로 장려했습니다. 예를 들면 증류식 소주에는 높은 세금을 부과하고, 희석식 소주에는 적게 부과하는 방식을 사용했죠.
희석식 소주는 맛과 품질이 증류식 소주만큼 뛰어나지 못했지만, 값이 싸고 그만큼 공급량이 많아서 대량으로 소비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서민과 학생의 사랑을 받고 모임의 매개체가 됩니다. 이렇게 저렴한 희석식 소주는 당시 대폿집이라고 불리던 술집에서 서민의 마음을 달래주고 학생들이 시국을 논하는 자리에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혹시 화염병이라는 단어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군사정권이 장려했던 희석식 소주가 대량으로 소비되면서, 이 소주의 빈 병이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수 단으로 사용됩니다. 지금은 드라마와 영화의 대모나 시위 장면에서나 볼 수 있는 그 유리병. 던져서 병이 깨지면 불이 붙게 되는 것이 바로 화염병입니다.
빈 소주병은 구하기 쉬웠고, 적당한 무게와 손에 잡기 좋은 그립감 덕분에 던지기도 좋았습니다. 게다가 소주의 유통에 사용되는 플라스틱 박스 덕분에 보관과 이동마저 편리했습니다. 그래서 소주는 독재정권에 대항하는 학생들의 설움을 달래주고 용기를 북돋아주며 모임을 결속을 단단하게 해주면서, 한편으로는 독재정권이 쏘아대는 최류탄에 대항하는 저항의 무기 역할로도 사용됩니다.
그래서 소주는 한국인에게 단순하게 그저 마셔서 취하고 즐기는 ‘술’의 의미를 넘는 상징적인 존재입니다. 경제 성장으로 다양한 술의 소비가 늘어가고 취향이 다양해지면서 소주의 소비는 점점 줄어가고 있지만, 앞으로 그 어떤 새로운 술이 나타난다고 해도 소주는 소주로 남을 것입니다. 지금 한국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과 민주주의는 소주가 함께했기 때문입니다.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다른 술이 많아진다고 해도, 소주의 상징성만큼은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혹시 소주 한잔 생각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