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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ew Local, Drink Local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 소감을 얘기할 때 인용했던 표현이다. 월드클래스 감독의 말이라 그런가, 영화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도 잘 들어맞는다. 백여년 이상 전세계의 맥주 애호가들에게 사랑받는 대표적인 맥주로 필스너, IPA, 람빅(괴즈)이 있다.
오리지널 필스너인 필스너 우르켈, IPA의 초기 유행을 선도했던 인디카 IPA, 야생효모의 선물인 칸티용 괴즈
앞서 언급한 세 종류의 맥주가 모두 익숙하다면 당신은 이미 맥덕. 편의점 맥주나 펍에서 수제맥주를 조금 마셔봤다 하면 앞의 두 종류는 알 것이다. 라거의 시원함을 간직하면서도 곡물의 풍미와 홉의 쌉싸름함이 돋보이는 필스너는 심심한 라거에 질린 맥주 애호가들의 구세주다. IPA는 수제맥주 입문자들에게 신세계를 느끼게 해주는 수제맥주 전도사와 같다. 물론 강한 향 만큼이나 쓴맛 또한 세기때문에 수제맥주 수문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신맛이 나거나 쿰쿰한 가죽, 흙의 향이 나기도 하는 람빅(괴즈)의 경우 앞서 언급한 두 맥주보다는 덜 대중적이지만 수제맥주에 빠지다 보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끝판왕 같은 존재다.
세가지 맥주는 모두 각 지역의 재료(효모, 몰트, 홉, 혹은 물)나 문화에 의해 각자만의 개성이 생겼다. 필스너가 홉의 개성이 돋보이는 맥주가 된 것은 플젠의 물 성분이 홉을 강조하기 좋아서였다. IPA는 과거 영국령이었던 인도로 보내야할 맥주가 긴 항해 중에 상하는 걸 막기 위해 홉을 때려 넣다보니 만들어졌다. 람빅(괴즈)은 벨기에에서 만들어지는 맥주로 일반적인 맥주 효모가 아닌 야생의 효모를 사용해 발효한다. 그런 이유로 벨기에의 특정 지역 외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만들더라도 람빅이라는 이름은 사용할수가 없다. 대표적인 3종류의 맥주만 얘기했지만 대부분의 맥주는 그 탄생부터가 지역적인 특성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라거의 등장과 세계정복
라거 효모가 개발되고, 기술의 발전으로 한없이 가볍고 청량한 맥주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카스, 테라와 같이 현대인에게 가장 친숙한 맥주인 대량 생산 라거(Industrial Lager)는 그 이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불투명하지만 진한 맛의 맥주는, 빠른 속도로 값싼 라거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다. 풍미가 연하고, 도수가 낮아 한 자리에서 몇 리터고 마실수 있는 이 라거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시대에 최적화된 상품이었다.
라거를 병에 담아내 ab-inbev 브루어리의 모습, 일반적인 대기업 라거 브루어리의 모습이다.
대기업의 라거가 기존의 맥주들을 대체하면서 많은 종류의 전통적인 맥주가 사라지고, 지역적인 특성또한 옅어지게 된다. 대기업의 양조장에서 한 번에 수백만리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대량의 재료가 필요하다. 균질적인 재료를 구하기 위해 원자재 또한 대량으로 생산되는 지역에서 수급하게 된다. 그 결과로 어느 나라에서 만들 건, 비슷한 맛이 나는 라거가 나온다. 맥주에서 지역적인 개성이 사라진 대기업 라거의 시대가 온 것이다.
수제맥주와 Brew Local, Drink Local
펍과 마트의 맥주 코너를 판박이처럼 찍혀나오는 대기업 라거가 점령해버렸다. 똑같은 맛의 라거만 넘치는 상황에 질려버린 미국의 맥주 애호가들이 결국 들고 일어났다. 라거가 등장하기 이전 다양했던 맥주 스타일들을 살려내고, 다시 맥주에 진한 풍미를 되찾고자 했다. 1970년대 미국과 영국에서 시작된 수제맥주 운동은 대기업의 라거에 대한 반발을 그 바닥에 깔고 있다. 대기업 라거의 심심하고 뻔한 맛에 대비되도록 몰트, 홉, 효모의 특성이 살아있는 맥주를 추구한다. 세계 각지의 원자재로 지역색을 잃은 라거 대신, 브루어리와 가까운 지역에서 생산되는 보리, 밀, 홉을 쓰거나 과일 등을 사용해서 개성을 살리는 것이다.
소규모 브루어리의 브루잉 과정 - gettyimage
모든걸 손으로 하진 않지만 수작업이 필요한 소규모 브루어리의 작업 - pixabay
어느 지역에서나 똑같은 맛을 추구하는 대기업 라거의 대척점에서, 그 지역만의 특색을 지닌 맥주를 만들어내는 것, 그것이 Brew Local이고, 대부분 수제맥주 브루어리들의 지향점이다. 하지만 수요없이 생산만으로 지속되지 않는다. 막대한 자본을 등에 업은 라거의 활용한 공격적인 마케팅은 라거의 입지를 지키는 수단이다. 맥주 자체에 개성이 약한 만큼 마케팅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차별화 한다. 수제맥주 생산자들은 이미 맥주를 만드는 비용만으로도 힘에 부치기 마련, 결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맥주맛으로 사로잡고, 라거와는 다른 차별점를 보여줘야 한다.
다양성과 맛으로 맥덕을 사로잡고, 수제맥주에 입문하는 맥린이들을 늘려야 한다. 왜 지역의 수제맥주를 소비해야 하는지, 라거만 남은 세상보다는 로컬에서만 만날 수 있는 다양한 수제맥주가 있는 세상이 좀 더 행복한 세상이란 것을 증명한다면, 자연스럽게 자기 지역의, 혹은 국내의 수제맥주를 소비하는 Drink Local 문화가 늘어갈 것이다. 하지만 소규모 자본의 브루어리들에게 모든 짐을 넘기기에는 주세법과 대기업의 자본 벽이 너무나 높다.
Drink Local 구글링. 지역 브루어리 활성화를 위한 이벤트나 굿즈를 쉽게 볼 수 있다.
초기의 수제맥주는 오프 플레이버(이취 : 잘못 만들어지거나 보관된 맥주에서 나는 냄새)가 나거나 맛 자체가 떨어지는 경우도 많았지만 요즘의 수제맥주는 외국의 수제맥주 못지않게 높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라거에 비해 다소 높은 가격 때문에 고민 되겠지만 맥주에 들어간 좋은 재료와 정성이라 생각하고 일단 한 번 마셔보자. 첫 한모금에서 느껴지는 풍부한 맛으로 바로 보상 받을 것이다. 수제맥주를 사랑하고 소비하는 맥덕, 맥린이들의 한 잔 한 잔이 소규모 브루어리들에게는 힘이 되고, 새로운 맥주를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된다.